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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경험, 하나님과 이웃을 더 넓게 이해하는 가치백소영 교수,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주최 ‘아름다운 세움’에서 강좌 펼쳐
김형준 기자 | 승인 2018.02.07 20:52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에 열리는 아름다운 세움 강좌. 지난 1월에 열린 강좌에서는 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다.

여선교회전국연합회(회장 백삼현 장로)는 2018년에도 ‘아름다운 세움’ 강좌를 이어갔다. 아름다운 세움 강좌는 여선교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여자 성도들의 교양과 지성, 영성 향상에 큰 도움을 주어왔다. 올해 첫 강의는 지난 1월 29일 여선교회관에서 이화여자대학교 ‘백소영 교수’(기독교사회윤리학)가 ‘여성 경험의 인문학적 토대’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백 교수는 “여성의 경험이 마주보는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데 더 유용할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는 경험”이라고 필요성을 강조했다.

■ 인문은?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

먼저 본격적인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인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규정지을 필요가 있다. 백 교수는 인문(人文)을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라고 했다. 인문을 한자로 보면 ‘사람’(人)이 만든 글(文)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직역할 수 있지만 ‘글’은 꼭 글월만 아니라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인문은 인위적이고, 반자연적이고 반항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이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인문학에 대해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있고 하나님의 적으로 여기기도 한다. 백 교수는 “기독교인으로서는 인문이 주는 저항적인 느낌도 있지만,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기쁨을 글과 그림으로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것도 문(文)이다. 따라서 인문학은 긍정과 부정 양쪽 방향이 다 있다”라고 중간적 역할로 기독교와의 타협을 시도한다.

여성 경험의 인문학적 토대’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백소영 교수

■ 여성의 경험이 필요한 이유-인간의 제한성 때문에

이 부분에서 인문학에 여성의 경험이 왜 굳이 새롭게 강조되어야 할까? 그것은 인간에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인간의 특징을 독특하게 동물과 하나님과 비교하며 설명했는데, 그는 하나님은 인피니트(infinite) 즉 무한하고 완전한 자유의 존재이며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반면, 동물은 피니트(finite)한 존재로서 제한적이고 자기 운명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즉 사자가 육식을 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채식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에 속할까? 동물과 신의 ‘사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닮게 해 주셔서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로 인해 인간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자유(freedom)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영이 아니며, 전지전능하지 않는 피니트(finite)한 면이 남아 있다. 

백 교수는 “이것이 인문학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라고 지적한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도 담고 있지만, 인간이 썼기 때문에 인간의 제한성과 편견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여성 경험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성경에서도 이런 부분이 나타난다. 이스라엘의 글과 그림 등 ‘문(文)’은 약 4천년 동안 써왔다. 그런데 이 성경은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모두 남자가 썼다는 면도 나타난다. 백 교수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남문학이었다.”며 “결국 모든 인간들의 모든 것을 남자가 그린 산물이다.”라고 표현했다.

백 교수는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생육하고 풍성’하게 살며 인간보다 못한 ‘피니트’들을 다스리라’고 동등한 명령을 하셨지만, 여자들은 자기 경험을 토대로 그릴 장소도 없고, 배제되거나 압수 당하기도 했다”며 “사회 윤리도 주로 남자들의 사제, 목사들이 결정해 왔다”고 지적했다.

■ 여성들은 ‘인문’에서 왜 배제되었는가? 가부장적인 제도가 원인

왜 이렇게 여성들이 배제되었을까? 백 교수는 여성만이 갖고 있는 ‘월경’을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배제 당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월경을 부정한 것으로 교육받는다. 그런데 가정만이 아니라 사회가 그랬고, 성경에서도 월경을 하는 도중에는 하나님을 만나서도 안 되고 예배에조차 참여할 수 없게 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주면서도 왜 월경을 피하라고 하셨을까? 월경은 분명히 생육과 번성의 상징인데도.

이런 배경에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주도권이 바뀐 것에 있다고 백 교수는 설명했다. 이 주도권이 바뀐 계기는 농경 문화다. 농경 시대 전에는 여성을 더 우월하게 여기던 시대였다. 아이가 여자에게서 태어난다는 자체가 신비였고, 그 신비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봤더니 생리와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여자 몸에서 나오는 피가 생명 만드는데 연관성이 있다고 보았고 이 생리혈에 마술적인 힘, 파워풀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어 숭배까지 했다.

그러나 농경시대 이후에는 물리적으로 힘이 가진 사람이 가정을 지배했고, 남자들은 이 힘을 이어가기 위해 가부장제를 사회적으로 확립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려야 성립이 된다. 그래서 공격한 것이 월경이었고, 이를 철저하게 부정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유대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가 그랬다. 백 교수는 그래서 월경을 부정적으로 본 성경 말씀이 “굳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라고 받을 필요가 없다”며 “이 무늬를 만든 남자들이 가진 제한성 때문에 표현된 것”이라고 해석의 단서를 제시했다. 오래된 역사를 거치면서 여자가 역사를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온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따라서 공동체의 삶에는 남자들이 못해본 여성 경험이 필요하고, 여성의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남성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성 여성 모두를 세우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역사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가부장적인 형태도 이제 문화사회학적으로 끝난 상태다. 백 교수에 의하면 가부장제는 ‘관성’만 남았다. 가부장적인 권위는 동력이 끊어졌는데, 오랜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굴러가고 있는 형태다. 가부장제는 생산 능력이 성인 남자가 독점해야만 가능한데, 생산 능력을 남성만이 독점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성만 가지고도 생산 노동이 가능하기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유지되기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가부장제가 무너졌는데도 사람들은 자기 편의대로 이 ‘가부장’의 권위를 이용한다. 며느리는 시부모에게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것 같지만, 자신이 불리할 때는 ‘나 약한 여자야.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가부장의 그늘 아래 보호받겠다는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 갈등이 많은 상태다.

백소영 교수. 여성의 경험이 인문학과 사회, 신앙에 필요한 점을 강의했다.

■ 여성의 경험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을 깊게 한다

이럴 때 의문이 든다. 과연 여성 경험은 유의미한가?이다. 남자들 주도의 문화 방식에 어떤 점이 부족할까?

여성 경험이 왜 인문학적으로 중요한지는 사실 모성 경험을 하고 나서 하나님을 더 잘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가 많이 아팠을 때 아이를 보면서 “내가 아프면 하나님이 얼마나 아프게 바라보실까?”를 더 실감하는 것과 같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경험이지만, 인간은 이런 이기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이기성을 초월하는 경험을 한다”고 백 교수는 말한다. 아이가 아플 때 곁에 있으면 병이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병을 옮거나 말거나 아이 곁에서 돌본다. 아이를 사랑함으로써 이기적인 자기를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체험이다. 이 모성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자기를 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셨는가’하는 사랑의 마음을 실감하게 한다.

백 교수는 그래서 “여자들에게도 하나님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무섭고 벌 주려고 하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엄마처럼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많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뿐 아니다. 엄마는 부족하고 약한 아이가 더 애틋하고 더 마음을 쓰게 된다. 이런 모성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도 우리 중에서 더 약한 이를 사랑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여성 경험이 필요한 이유다.

백 교수는 한 글을 소개했다. 장수풍뎅이를 기르며 경험한 내용인데, 어느날 기르던 장수풍뎅이가 14마리 애벌레를 낳았다. 그런데 이 14마리가 모두 다르더라는 것이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놈들인데도 아주 센 놈이 있는가 하면 약한 놈도 있었다. 약한 놈은 숨어다니고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결국 주인은 큰 놈을 밀어버리고 약한 놈을 먹이고야 만다. 그러면서 여리고 느리고 뒤처지는 놈을 더 사랑하는 어머니 하나님이심을 깨닫는다.

백 교수는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울타리 같고 강한 풍랑에서 건져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분명 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주시지만, 연약한 자를 돌보시는 어머니 같은 모습도 있다고 말한다. 상한 갈대로 꺾지 못하신다는 말씀에서, 연약한 아이를 더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같은 하나님의 품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백 교수는 하나님을 균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여성의 경험이 중요한 사례가 또 있다.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나오는 어머니 나문희 씨에서의 모습이다. 나문희 씨는 쉬고 싶다면서 자신의 할 일을 도와줄 가사 도우미를 채용했는데, 가사 도우미가 가사 일을 하는 것을 보며 맘이 편치 않다가 결국 자신이 그 일을 하고 심지어 가사 도우미에게 용돈까지 쥐어준다.

백 교수는 “나문희 씨가 자신이 다시 일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그 일을 해 봤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식사도 대충 먹자고, 일도 대충하라고 하지만, 나문희 씨는 그 일을 해 봤기 때문에 대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공감하기에 가사 도우미에 대한 연민이 나온 것”이라며, “하나님도 인간의 배신, 불신앙의 원인을 겪고 보시려고 오신 것이 아닐까? 겪어 보지 않고서야 그 고통, 그 아픔도 알 수 없기에 오신 것이 아닐까?”라고 여성의 경험과 같은 부분임을 설명하고자 했다.   

여선교회관 7층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세움 강좌. 이화여대 백소영 교수가 강의했다.

■ 마주보는 사회에 적합한 여성 경험들

반면 대접이 힘든 것을 아는 이유는 대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데, 최근 여성들이 가부장 힘이 무너진 것을 이용해 이기적인 상태가 되어 버려 이 '대접 경험(일종의 공감)'이 사라진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공감하지 못한 채(해 보지 않았으니까) 남자들에게 “당신이 설거지 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움을 모르고 ‘희생’을 상대방에게 던져버리면 공동체 사회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함께 일하는 경험이 없으면 공동체로 살아가는 역할이 없어질 수 있다. 함께 궂은일을 해 나가다 보면,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며, 명절 때 같이 일을 하는 것, 교회에서 김장도 같이 해 나가는 것이 공동체 삶의 사례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여성들은 이러할 때 대개 자기가 하는 일을 남들이 도와주는 것에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내가 다 해 버리지 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여성의 경험은 새로운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 교수는 “성경에 의하면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해 세모 형태의 위계질서가 아니라 서로가 마주보는 동그라미 형태의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고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사회의 모습을 말하고 여기에 적합한 경험이 바로 여성들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의 경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것은 여성 리더들의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들도 삼각형의 위계 질서를 답습했지만, 실제로 여성의 경험은 이런 동그라미 형태의 질서에 잘 맞는다고 말한다. 왜 그러한가 하면, 여성들은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구석 자리나 주변에 있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동그라미 형태의 질서에서는 둥글게 앉은 이들이 모두 다 주변이 된다. 동그라미 중심에는 예수님 혹은 하나님이 계신다. 백 교수는 “성경에는 모두가 다 서로 주변에서 마주보고 있는 공동체 윤리를 얘기해 왔다”며 그 사례로 사사의 시대를 들었다.

사사 시대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재능을 세워서 리더를 만들었기 때문에 세습이 안 되는 시대였다. 사사는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세워져 시대를 잠깐 이끌었을 뿐이다. 이런 사사의 시대가 약 200년 동안 유지했던 이유는 수직 제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그라미 질서가 있는 곳에서는 주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리이기에 그런 형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는 곳이다.

백소영 교수의 강의 장면

■ 여성의 경험을 확대하는 새로운 윤리는?

백 교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윤리에 대해 여성들이 해야 할 세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첫째는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여기에서의 강조점을 백 교수는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라고 꼭집었다. 즉 하나님은 우리 몸을 생명을 지켜내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재생산의 도구로 쓰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달란트, 나의 소명, 나 아니면 만들지 못하는 무늬를 만들며 살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이 윤리 강령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했다.

두 번째 제안은 서로 마주보라는 것이다. 위 아래 수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주봄’이다. 마주보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답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백 교수는 “성경에서 말하는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는 그의 ‘마주봄 같은 도우미’”라고 해석해야 하고, “내가 답을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마주 보면서 뭘 도와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회퍼는 공동체의 원리로 ‘하나님은 꿈을 싫어하신다’고 극단적으로 말했는데, 이는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이 가진 꿈을 얘기하는 순간, 모든 사람이 그 꿈에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한 사람의 꿈에 모든 사람이 달려가면 크리스찬의 공동체가 아니다”며, 아무런 전제 없이 전제없이 마주 보는 것이 진정한 마주봄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에 있을까? 백 교수는 “답은 함께 마주본 ‘사이’에 있고, 이것은 여성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백 교수는 “여성은 그동안 잘 들어왔고 답을 줄 능력이 있지만, 가부장적 관성이 아직 있는 상황에서 말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며 “남성적 여성이 안 되도록, 여성 경험을 끌어와서 공적인 담론을 만들어가는 게 여성 경험을 통한 인문학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강의를 마치고 마무리 말을 하고 있는 여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백삼현 장로

 

 

김형준 기자  ccanca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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