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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존중하는 사회, 기독교가 앞장서길
김형준 기자 | 승인 2018.02.23 14:00

이윤택 씨의 여성 추행 사건이 '나도 당했다'는 내용이 드러날수록 목불인견입니다. 이 사건에서 제어되지 않는 권력, 무한한 권력에서 나오는 인간의 악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인 연극으로 삶의 '희망'을 꽃피우려는 '인간'의 열정을, 이윤택 씨는 무참히 농락했습니다. 반면 연극해 보겠다고 하는 젊은 여성들의 희망과 열정은 강한 권력 앞에서 반항하지 못하고, "그래 이것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한 한 과정인 거야"라며 오히려 자기를 기만하게 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서글픈 이야기인가요!

권력을 쥔 자들이 여성을 성의 노리개로 삼는 역사의 사례는 부지수입니다. 일본 군인들은 점령한 나라의 여자들을 끌고가서는 성욕을 해소하는 위안부로 전락시켰습니다. 여성을 얼마나 많이 데리고 있느냐는 것은 권력의 힘을 상징하는 바로미터였습니다. 왕의 옆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타락한 군주일수록 여성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습니다. 타락한 인간 주변에는 항상 여자들이 넘쳐났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이 현상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돈이 많은 남성들이 강남의 룸살롱에 가서 여자를 끼고 술을 먹는 것이 '로망'인 점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최근 한 뉴스에는 한 기업인이 젊은 여성들을 집으로 불러놓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같은 선상에서 여성을 성욕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연장선상입니다. 성 매매는 결코 중단된 적도 없고,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성 욕구>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의 내적 죄악을 몰아내지 않는 한, <약자>를 무시하고 내 욕망의 분출구로 대하는 마음을 도려내지 않는 한, 이윤택과 같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행인 것은 미투 운동을 통해, 성적 대상으로 삼은 여성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일부가 드러나고 있고, 또 여성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백년하청 같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이윤택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은 우리 안의 악이 '손쉽게' 준동하지 않게 하는 효과를 조금이라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어 봅니다.

그리고 이 운동으로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여성은 성적 대상이 아니며 차별대상도 아닌 <인간>임을! 피가 있고 아픔이 있고 인생을 고민하며 삶을 가꿔가고 싶어하는 존재임을! 그래서 함께 동등하게 삶을 나눠가는 대상이어야 함을!

기독교가 먼저 <여성> 바로 보기 운동, 여성 존중하는 사회 운동을 펼쳤으면 합니다.

김형준 기자  ccanca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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